설립배경

      복음자리 마을 공동체 운동에서 비롯되다!

      작은자리의 뿌리는 1970년대 후반부터 신천리 복음 자리 마을과 한독주택, 은행리 목화마을에서 펼쳐진 복음자리 마을 공동체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원래 '복음자리'는 故 제정구 선생과 정일우 신부가 주민들과 함께 살았던 서울 양평동 마을의 5평짜리 사랑방 이름이었는데, 복음자리는 삶의 터전, 즉 보금자리라는 의미와 성서에 나오는 '기쁜 소리'라는 뜻을 모두 갖고 있었다. 이 사랑방은 주민들을 위해 무슨 프로그램을 하는 곳이 아니라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열린 공간이었다.

      1977년 양평동에 철거계고장이 날아오고 갈 곳이 막막했던 양평동 주민 170세대가 집단 이주하여 정착해 만든 마을이 시흥 신천리의 복음 자리 마을이었다. 이후 1979년 신림동, 사당동 일대 8개 지역에서 철거당한 주민 164가구가 복음자리 인근에 집단 이주해서 한독주택 마을을 만들고, 1985년에는 목동 철거민 105가구가 인근에 정착하여 목화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복음자리 마을 공동체 운동은 3개 마을 주민들이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을 이겨내고 공동체로 살아가면서 이루었던 모든 활동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고리대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주민의 자발적 상호 부조 활동으로 시작한 복음신용협동조합 건설(1978), 마을 작업장, 복음자리 잼 등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벌어들이는 생산 공동체 활동, 가난의 대물림을 막고 미래세대를 교육하기 위한 복음 장학회 활동(1978), 막걸리 한 사발과 함께 신명 나게 어우러지며 공동체의 참맛을 나누는 복음 단오제(1981~) 등 복음자리 마을 공동체 운동은 한국 주민운동의 원형(Archetype)이며 오늘날 아시아 주민 운동의 교과서가 되고 있다.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자리 - 작은자리 회관(1985~)

      1985년 故 제정구 선생이 얘기했던 "작은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와서 드나들 수 있는 곳" 작은자리가 건립된다. 공동체는 만남으로부터 시작되고 성장해나가는데, 3개 마을이 서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나 마을 주민들이 자주 모여 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장소가 없는 것을 해결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마을 인근의 공장 노동자들과 청년들, 주변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마을 사랑방이자, 지역 공동체 구성을 위한 '중심센터'로서 작은자리 회관이 만들어졌다.

      작은자리 회관은 크게 네 가지 일이 중심이 되었다.
      첫째는 마을 공동체 활동의 중심센터로서 복음신협, 복음 장학회 등 주민 조직의 운영 공간이었다. 그동안 마을의 조그마한 창고 방에서 활동했던 복음신협과 장학회가 내용을 가다듬어 작은자리 안에 둥지를 틀었다. 둘째, 환갑잔치, 결혼식, 경로잔치, 돌잔치 등 마을 주민들의 행사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였다. 주민들은 복음신협이나 장학회 총회, 송년회 등 특별한 날들을 만들어 함께 어우러져 놀면서 서로의 공동체 의식을 확인해갔다.
      셋째, 주민 문화 공간으로서 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교육과 문화 활동을 펼쳐나갔다. 한글 교실, 풍물, 서예, 독서 모임, 청소년 영화마당, 시민 월례 강좌, 작은 도서관, 밥상 공동체 등 주민복지센터로서 활발히 일했다.
      넷째, 청년 운동과 지역 운동의 산실이었다. 인근의 공장 노동자를 위한 한울 야학, 노동 상담과 노조 설립 지원, 1987년 한울림청년회 결성 등 지역 청년 운동이 작은자리에서 싹텄다. 청년들은 작은자리를 거점으로 기타반, 소리반, 풍물반, 독서토론반, 시사토론반 등 모임을 조직하고 지역 일에 적극 앞장섰다.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으로 새롭게 도약(1996~)

      1996년 작은자리 회관은 작은자리사회복지관으로 기능을 전환한다. 1989년 시흥시 승격과 도시화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어 인구수도 늘어나고 인구 구성도 변화하게 된다. 이에 3개 마을만이 아닌 지역주민 전체를 아우르며 활동하는 지역 공동체 운동의 구심이 필요했다. 또한 가난 극복의 문제만이 아닌 다양한 생활상의 문제와 결합하여 주민의 삶의 질과 복지 향상을 목표로 활동할 필요성이 있었다. 19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민주화됨에 따라 제도화된 사회복지 영역 안에서 복음자리 마을 공동체 운동의 가치와 철학을 실천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사회복지관으로 전환된 작은자리는 다양한 복지 활동으로 주민복지센터 및 지역복지센터로서 역할을 강화해갔다. 작은자리 회관 안에서 이루어졌던 다양한 주민 모임들 - '동화 읽는 어른 모임', '어깨동무 공부방 자원 교사 모임 및 자조 모임', ' 밥상 공동체', '청소년 도서위원회', '우리 밀 살리기 판매장 운영 모임'- 이 복지관 안으로 들어왔고 이들 모임이 주축이 되어 '우리 동네 작은 도서관', '녹색 가게', '지역 주민 학교', '어깨동무 공부방 운영', '천사 축제', '나눔 밥집' 등을 운영하였다.
      또한 아동 청소년을 위한 상담과 교육, 가족과 실직 가정을 위한 자활 지원 활동, 성인 및 어르신을 위한 각종 교육 문화 활동 및 평생 학습관 운영, 작은자리 장애아동발달센터, 작은자리 사례관리센터,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운영 등 복지 활동의 영역을 넓혀나감으로써 시흥시 지역복지의 지평을 여는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고(故) 제정구와 정일우의 약속과 작은자리의 정신

      제정구와 정일우는 '주민들을 위해서 무엇을 만들거나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자 하였다. 판자촌 삶에서 그들의 두 가지 약속은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의존토록 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절대 하지 않고 그냥 산다." "그냥 이웃으로 함께 살면서 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일 때 끝까지 함께 하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자!"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이웃이 바로 하느님'이라고 생각하였고 늘 그들 안에서 그들과 함께하고자 하였다. 주민은 단지 수혜자나 대상자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당당한 주인이며 존엄성과 가능성을 지닌 능동적 주체이며 권리자이다.

      작은자리종합사회복지관의 핵심 가치는 창립 주체의 사람 중심, 주민 중심의 정신과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작은자리복지관은 이러한 정신과 철학을 기초로 가난한 이웃을 섬기고 주민과 함께 동행(同行)하며,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마을을 변화시키고 더불어 행복한 공동체를 누리는 '주민의 지역사회'를 이루기 위해 실천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