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토요체험 활동지1~(분원백자관)
      2006.09.20 12:18
      • 작성자 아동복지
      • 조회 3,089


      분원백자관


      ★ 조선 왕실도자의 산실인 분원과 분원백자관



      분원백자관은 조선왕실도자를 빚던 분원이 운영되던 현장에 폐교사를 재단장해서 세운 박물관이다.




      예전에는 소내(牛川里)로 불리던 이 지역은 임금님이 계시는 한양과 매우 거리가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질 좋은 백토가 나고, 땔감이 풍부해서 백자를 만들 수 있는 여러모로 편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도자를 굽기에 용이하도록 땔감을 따라 약 10년 주기로 분원을 광주전역을 돌아다니며 운영하다가 이 지역의 흙과 땔감이 부족하게 되자 다른 지역의 흙과 땔감을 공급받기에 용이한 소내 마을의 강가로 분원을 고정했던 것이다. 이 지역은 강원도로 이어진 북한강과, 충청도로 이어진 남한강의 두 물길이 만나는 합수지점으로 전국의 모든 물자가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했던 곳이다.



      분원리 마을로 들어서자 굽이굽이 운치있는 산봉우리들을 뒤로 하고 팔당호가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 있다. 강변의 넓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맞은편 분원초등학교로 들어가니 운동장 한쪽으로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바로 사옹원의 최고 수장으로 당시 정1품의 벼슬을 하던 도제조와 분원의 관리감독자인 번조관 등의 송덕비들이다.  
      이 송덕비들은 본래 강가에 있었던 것을 팔당호가 생기면서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학교로 옮겨 놓은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체제공, 능창군 이숙, 박기수, 박규수, 민영달, 다산 정약용의 큰 아들 정학연 등 당대의 내노라 하는 관리와 학자들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송덕비를 뒤로하고 언덕으로 오르다 보면 보도블럭 사이사이에 '사옹원', '분원', '달항아리', '철화백자용문호' '청화백자' '밑가새' '공뚜껑' 등 예사롭지 않은 단어들이 쓰여있다. 낯익은 단어들이 아니어서 한 단어 한 단어 입으로 따라 읽으며 '도무지 무슨 뜻일까' 생각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비탈진 언덕을 다 넘어오고, 드디어 분원백자관이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소중해서 은밀하게 숨겨놓은 듯 감춰져 있는 분원백자관을 만나면 마치 보물찾기에서 가장 귀중한 것을 찾아낸 기분이다.


       


       <박물관 외부 전경>


      조선시대에 이곳에서 만들었던 백자는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강하며, 눈빛처럼 우유빛처럼 새하얗고 품질이 우수해 도자 잘 만든다는 중국 명나라 황제가 사신을 보내 구해오라 할 만큼 그 명성이 드높았다. 또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지금까지 도자 경매가 사상 세계최고의 금액인 842만 달러를 받았던 '철화백자운룡문항아리'도 바로 이곳 경기도 광주에서 분원을 운영할 당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렇게 세계 최고의 도자를 만들던 분원은 이곳에서 19세기 일제 강점기 시기에 일본이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그 위에 학교를 세워 조선왕실의 흔적과 조선 최고의 도자의 제작현장을 지워버렸다. 분원백자관은 일제에 의해 땅속으로 까맣게 묻혀버린 조선백자의 혼을 다시 일깨워 놓았다는 점에서 규모가 작은 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결과 현재의 분원백자관은 공방지 자리로 밝혀졌고, 아래 언덕은 가마터 자리임을 알게 되었다. 도자를 굽는 가마가 언덕으로 오르듯 만들어진 것을 생각해보면, 언덕을 오르며 조금은 숨가쁘게 분원백자관으로 와야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박물관을 왜 이렇게 힘들게 언덕 위에 지어 놓았지?" 라고 투정했던 꼬마아이들도 이런 설명을 듣고 나서는 "아!, 그래서 힘들었구나!" 라고 몸으로 체험하며 이해하고, 더 궁금해 하면서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런데 도자기 굽는 가마는 왜 언덕으로 올라가게 지어야 하는데요?", "그래서 여기서 어떤 도자기를 만들었어요?", "찰흙으로 만들면 백자가 안돼요?", "저 한강으로 흙과 땔감을 실어 날랐다구요?", "그럼 한강이 고속도로네!", "나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이렇게 아이들이 몸으로 느끼며 궁금증을 가지고 풀어가는 자연스런 학습은 바로 분원백자관이 그 현장에 존재하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점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박물관 내부 전경>


      박물관 안에는 발굴조사 당시 나왔던 사금파리들과, 주변의 토층을 실제로 떠서 벽에 붙여놓았기 때문에 당시의 백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가 있다. 또 분원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담긴 '아, 분원' 이라는 영상물을 볼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여느 박물관과는 달리 분원백자관은 특별히 해설이 있는 박물관이라는 점이다. 백자에 관한 재미있는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면 어느새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 같은 뿌듯한 기분마저 든다. 도자체험 역시 특별하다. 세계 최고의 도자가 빚어졌던 현장에서의 체험은 조선도공의 혼을 이어받기라도 하듯 더욱 각별하게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이렇게 빚어진 도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만의 도자를 가질 수 있는 특별한 기쁨을 선사한다.  

      분원백자관을 관람하고 체험까지 마치고 나서 내다보는 분원의 풍경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노을보다는 백자의 희고 부드러운 선이 어느새 마음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분원백자관 관련 보도자료 인용-